이 공간으로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다. 최근에 작정하고 글을 쓴 게 1년도 훌쩍 넘어서 꽤나 어색하다. 뭘 쓸지에 대한 주제 선택부터,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단어 선택까지. 그럼에도 오랜만에 글을 적어보려는 이유는, 그때의 나를 되찾고 싶어서다. 긍정적이고 확고했던 신념, 또 세상의 진실에 대한 무지함에서 나오던 순수함과 용기. 지금은 사회 물을 꽤 많이 먹은 탓인지, 걸핏하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표정으로 잘 드러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티가 나는 것 같다. 이렇게 투정을 부리기 위해서, 누군가를 욕할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 게 아닌데 싶은 생각도 든다.
내가 느끼는 이런 어두운 감정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무표정의 사람들로 꽉 찬 1호선의 출근철에서 옮은 피로인지,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어울리지 못함에서 오는 외로움인지, 퇴근시간과 월급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일지. 뭐가 어찌 되었든 지금 이 나이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잘못된 방향인 건 확실하다고 느꼈다.
나는 내 현실을 조금이라도 형상화하기 위해(형체가 없는 두려움은 종종 나를 잡아먹기 때문에), 이 증상들을 '서울병'으로 일축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직장인들이라면 단숨에 공감할 만한 병명인 것 같다. 서울의 출퇴근철에 끼여서 살다가, 본가에 내려가 몇 일 머물다 보면 휴양지가 따로 없다. 물론 서울에 올라올 일도 없이 쭉 본가 근처에 살았다면 이런 병의 존재조차 몰랐겠지만, 모르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직장이 아닌 대학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케이스라면... 대학생 분들껜 송구스럽지만 솔직히 서울병까지는 아닌 것 같다.)
뭐, 이 병도 나름 장점은 존재한다. 첫째, 더 많은 기회의 땅에서 어찌 되었든 돈은 번다는 것. 둘째, 가끔 본가에 내려가서 뵙는 부모님과 더 애틋한 관계가 된다는 점. 셋째, 좀 더 빨리 철이 들고 자아가 없어지고 소소한 행복을 찾기 위해 애쓴다는 것. 그렇다. 셋째를 제외하고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너무나 빠르게 그리고 복잡하게 흘러가는 서울의 낮과 밤의 파도를 놓치게 된다면 우울과 외로움에 물드는 건 순식간인 것 같다. 또 내 자아를 잃고 점점 다른 사람의 것들로 채워가기도 한다. 정말 순식간이기 때문에,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 쯤 정확히 이런 현상을 겪었다. 현상이라고 하니까 거창한 과학 이론 같긴 하지만... 나는 단단하고 꿋꿋하고 신념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쉽게 나라는 장벽이 허물어졌다. 이건 어쩌면 서울이 아닌 회사생활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가 쉴 틈이 없고 바쁘게 사나 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만의 행동, 나의 것들을 하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세상에 잡아먹힐 것만 같다. 혹자는 갓생이라고 하지만, 그저 발버둥일 뿐이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요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더욱 거대해지고 있다. 원래도 그런 생각이 있었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자유의 반대편에는 안정적인 삶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선택지가 있지만, 그 모든 장점들을 상쇄하는 자유로운 삶만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그냥 하고싶은 걸 하고싶다. 많은 곳을 가보고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종종 그런 삶을 체험할 만한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색하는 방안 중 대학 진학이 있었는데, 대학생들과 단편영화를 촬영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배우로 출연하게 됐는데, 솔직히 연기는 못한 것 같아서 나를 불러준 감독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촬영하는 동안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하고 재미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첫번째로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 두번째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특히 예술 분야)을 경험하는 재미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 날 이후로 내가 진심으로 이런 삶을 원하는구나 느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않는 그런 용자가 될 수 있을까,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하고 배를 곪으면서도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계속해서 추구해나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튀어나올 정도로 많이 했다. 그럼에도 항상 마무리되는 결론은, 내가 겪어보지 않는 이상 정답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내 앞길에 확신이 있지만, 과연 군대를 다녀오고 선택의 기로에 설 때 지금과 똑같은 마음가짐일지는 신도 모르는 것이기에, 그저 미래의 내가 현실에 굴복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블로깅을 많이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올해 제일 소망하는 목표가 하나 있다. 바로 내 이야기를 담은 앨범 발매이다. 원래는 블로깅을 하며 내 삶과 생각을 세상에 내비쳤지만, 앞으로는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세상에 내비치고 싶다. 어쩌면 일정 주기로 나오는 내 앨범, 내 곡들이 하나하나의 '회고록'이 될 것이다. 기술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함에도, 지금이 아니면 표현되지 않을 감정들을 발매하고 싶다.
두서없이 활자들을 뱉어냈다. 두서없는 이 글처럼 나라는 사람도 정말 자주 바뀌는 것 같다. 만약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찾고, 그 일에 모든 시간을 몰두하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나로서 정착될까. 아니면 끝없이 방랑하며 목적지가 없는 삶을 살게 될까. 둘 중에 하나긴 하면 좋겠다. 나에게 서울병을 극복할 용기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