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우리 정부는 국제 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는 나라 빚이 총 1500억 달러가 넘었지만, 보유한 외화는 40억 달러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500억 달러의 빚을 지고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IMF 외환위기의 발생 원인
국내 기업들이 대마불사(큰 말은 죽지 않는다)의 원칙을 믿고 문어발식 확장, 무리한 투자를 일삼았다.
종합금융사들은 단기차입으로 해외 자금을 빌려 기업들에게 투자 자금을 대출해주었다.
당시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은 500%를 웃돌았다.
이렇게 취약했던 한국 경제 구조는 결국 1997년에 위기를 맞이했다.
한보철강, 삼미, 진로, 대농, 기아, 한신공영 등의 대기업이 연쇄 부도가 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경제 신뢰도가 떨어지자, 외국 금융사들은 자금을 급히 회수했다.
외국 금융사들은 채무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았고, 갚아야할 외화에 비해 보유 외화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이 외에도 개인의 과소비, OECD 가입, 태국의 바트화 사태 등의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IMF 채무 상환
IMF는 구제 금융을 조건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금리 인상 및 부실 기업 정리, 금융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그때 은행 금리가 30%대로 치솟았고, 부채가 많은 기업들은 무너졌다. 은행도 줄줄이 도산했다.
결국 10가구 중 4가구는 실직을 하고,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국민들이 직접 금을 모아 나라 빚을 갚자는 운동, 금모으기 운동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운동으로 약 227톤의 금(약 18억 달러)을 모았다.
다행히 이후에 빠른 경제 회복률을 보였다.
1998년 말에는 외환 보유액이 520억 달러로 증가했고, 1999년 말에는 135억 달러를 조기 상환했다.
마침내 2001년에 최종 상환을 끝내고, 구제 금융을 신청한지 3년 8개월 만에 국가 채무를 정리했다.
그러나 이런 채무 상환과는 별개로 외환위기는 아직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IMF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일반적인 근로 형태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도 늘어났고, 공무원의 인기가 높아졌다.
하향 취업(해당 직업이 요구하는 학력보다 취업자의 학력이 높은 경우)도 늘어났다.
실제로 대졸자 하향 취업률은 금융위기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각 경제 주체의 대응 방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기업들은 차입에 의한 높은 부채율로 투자를 하던 과거와 달리 수익성과 현금 흐름 중심으로 변했다.
가계는 더 이상 저금리 시대에서 저축이 아닌 가계 부채를 당연하게 끼고 살아간다.
결론
IMF 외환위기는 급격한 경제 성장에서도 경제에 대해 무지해서 발생한 위기였다.
과거를 알아야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에, 모든 국민이 이러한 사건에 대해 이해하고 경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