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대 배치 후 첫 휴가를 다녀왔다. 솔직히 부대 안에서도 크게 불편한 건 없어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사회의 맛을 보다 보니 확실히 달았다. 다시 돌아갈 걸 생각하니 좀 찜찜한 기분이다. 나쁘진 않은데 말로 설명하기에는 내 어휘력이 아직 부족한가보다. 그래서 소설 등의 글을 많이 읽으면서 어휘력을 길러보고 싶은 요즘이다. 태환이와 도현이에게 읽을 책들을 추천받았다. 책은 언제나 옳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의 상태를 만드는 게 관건이지 음.
휴가를 나와서 3일 동안은 고령 본가에서 지냈다. 빼꼼이와 산책도 하고 CD플레이어로 음악도 많이 들으면서 지냈다. 그동안 자대에 적응하느라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레드와인을 깠다. 선물받은 와인잔과 함께 한 잔 했다. 나의 상상보다는 바디감이 훨씬 세서 처음엔 적응이 안 됐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다시 익숙해졌다. 자대에 있는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아서 술맛을 느끼는 감각이 저하된 것 같았다.
휴가 4박 5일 중 마지막 이틀은 서울에 올라가 친구들을 만났다. 따끈따끈하게 휴가를 나온 도현이와 함께 백룸 영화를 봤다. 영화 속에서 감독이 숨겨놓은 의미들을 많이 눈치채지 못했지만, 음침한 분위기의 미장센 그 자체로 나의 모험심과 집중력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공포영화 치고는 무서운 여운이 오래가지 않았다. 영화관을 나와서는 늘 정해진 루트인듯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바베큐 파티를 위한 장을 보고 나서, 파티룸 입실 시간이 다가오는 동안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사서 벤치에 앉아 마셨다. 햇빛이 직선으로 쐬는 느낌, 아무 감정 없는 건물과 물건이 따스한 색채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 좋았다. 입실 시간이 되어 파티룸에 들어가니, 최신 노래방 기기와 각종 술잔들, 쾌적하고 아늑한 시설이 우리를 반겨줬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은 하룻밤도 아직 보내지 않았음에도 시설 사용을 연장하고 싶다는 욕심을 자아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다스리고 없애야 하는 존재다 하하.
루프탑에서 홍대 거리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전경은 진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그라데이션까지. 이게 휴가의 맛이구나. 이게 돈의 맛이구나. 매주 월요일 저녁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보컬레슨을 받으러 지나가던 홍대 거리의 내가 보이는 듯했다.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거의 모든 측면에서 그때보다 발전한 것 같아 행복했다. 다시 사회로 온전히 돌아가게 될 날에도 이런 여유로움과 날씨 감각을 잊지 않기를.
후회없이 놀고 난 다음날, 육전국밥집에서 해장국을 먹고 준호네 작업실로 향했다. 얼마 전에 구했다고 한다. 약 1년 전 지금의 찌는 더위와 같던 여름 내가 첫 작업실을 구했을 적이 기억났다. 아주 막막하고 불안했던 동시에 드디어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거라는 기대와 설렘이 공존했었다. 언젠가 다시 상경할 때도 작업실을 구하겠지만, 그때만큼의 설렘은 아닐 것이다. 뭐든 처음은 기억에 제일 오래 남는다.
준호네 작업실에서는 연기 연습, 성우 연습을 해보았다. 연습이라고 하기엔 뭐한 놀이같은 느낌이었지만.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에는 언제나 열려있고 싶은 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해 덜 관대해지고 성장판을 스스로 닫아가는 느낌이다. 그러지 않도록 의식해야겠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임마.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무자비하게 더웠던 정오의 열기는 어디로 가고 그라데이션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나를 맞이해준 저녁이었다. 부대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시내의 어느 한 카페에 들러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랜만에 쓰는 블로그이기도 하다. 글을 쓰지 않으니 말이 점점 나오지 않게 되고, 자신감이 없어지는 게 느껴져서 글을 자주 쓰려 한다. 일단 모든 일기는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욕심은 접어두고 하나부터 나아지기를.
파리에서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오랜만에 틀었다. 그때의 몽글한 감정이 아른거린다. 낭만적이었지. 다음에 유럽 여행을 가게 될 땐 혼자 힘으로 가보리라. 더 낭비하고 낭만하리라.
이렇게 글을 씀으로써 오늘에 책갈피를 끼워놓았다. 종종 찾아오게 될 나를 상상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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