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다사다난하고 치열했기에 시간이 더욱 빠르게 흘러갔다. 일의 흐름에 나를 맡기다 보면 작년처럼 올해도 정리할 시간 없이 지나갈 것 같아서, 요즘 제일 가깝게 지내는 회사 동기 형과 카페에서 각자 회고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장문의 글을 쓰는 활동 자체가 오랜만이라서 미숙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꾸며내는 말 없이, 또 사회적 가면의 필터링 없이 진심을 담아내고 싶다. 사회적 가면을 너무 오래 쓰고 있다 보니 이런 니즈가 크게 생겼다. '23년까지의 회고는 내가 이뤄낸 성취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한 포트폴리오에 가까웠다면, 올해 회고는 정말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소주제들을 중심으로 작성할 예정이다.


올해 끝까지 한 일
단연 '매일 회사에 성실히 출근하기'가 아닐까 싶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스무 살부터 비가 오던 눈이 오던 전장연 시위로 열차가 지연되던 매일 꿋꿋이 출근해야 했던 나로서는 굉장한 성과였다. 사실 회사에서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존재였는가, 키맨의 역할을 했는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빡세게 노력하지도 않았고, 업무적 역량 증진을 위해 퇴근 후/주말의 시간을 투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려 노력했다. 적어도 1인분은 할 수 있게 아등바등했다.
내년 군입대 때문에 휴직을 해야 하는 나에게, 그래도 빈자리가 꽤 클 것 같다는 선임 분들의 말을 들으면 위안이 된다. 내가 키맨의 역할은 못할지언정, 우리 팀에 마이너스가 되진 않았구나.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지켜내며 조금이라도 성장해 내었구나. 어쨌든 간에, 타의로라도 꾸준히 한 곳으로 출퇴근하며 일을 배우고 성장해 나간 경험은 나의 큰 자산이 된 것 같다.


올해 끝까지 하지 못한 일
나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운동'이 아닐까 싶다. 내게 운동은 두 가지 축이었는데, '러닝'과 '헬스'였다. 사실 헬스는 아직 굳이 PT를 받아야 하는 생각이 있고, 지금의 초보 단계에서는 꾸준히 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생각에 크게 아쉽진 않지만, 러닝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22년부터 다이어트를 계기로 시작된 러닝이 '25년 10km 마라톤까지 도달한 것은 대단한 성과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 또한 출근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일 습관으로 굳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술 약속이 있어서, 행복한 일이 있어서, 날씨가 애매해서, 음악 작업을 해야 해서. 계속 핑계를 대며 폐활량과 러닝 근육은 실시간으로 줄어들었다. 큰맘 먹고 샀던 10만 원짜리 러닝 조끼, 여분의 헤어밴드, 나이키 러닝복 등은 가격만큼의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하나 다행인 점이 있다면, 주변에 러너 형 누나들이 많은 덕에 계속해서 동기부여를 받는다. 올해 힘들었던 순간에도 러닝을 하며 무기력과 좌절을 떨쳐내었고, 러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는 이걸 습관으로 굳혀 힘든 순간에만 러닝을 약처럼 찾는 사람이 아닌, 그저 매일 자기 수련을 수행하는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하프코스, 풀코스, 국토종주도 도전하고 싶다.
여담으로, 여행을 가면 러닝을 뛰곤 한다. 올해는 월미도, 부산 광안리, 제주도, 일본 하코다테 등에서 러닝을 했다. 뛰기 전엔 늘 그렇듯 '굳이 여기까지 여행을 와서 땀을 빼야 할까?'싶지만, 러닝 후의 건강한 도파민은 여행의 질을 높여주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미래의 나는 또 여러 핑계를 늘어놓겠지만.


잘하지 못해도 멈추지 않았던 일
'음악'이다. 방향성은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음악은 내 초등학생 시절부터 함께해 온 오랜 취미이자 꿈이다. 초등학생 때는 휴대폰 녹음으로 음악을 만들며 놀이 삼아 유튜브 활동을 했고, 중학생 때는 마이크와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구매 후 DAW를 만지며 이제야 조금 들어줄만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 힙합 커버 곡들도 작업해 유튜브에 종종 업로드했는데, 꽤나 큰 관심을 받으며 잠시나마 달콤함을 맛봤다. 고등학생 때는 목소리 녹음보단 프로듀싱, 비트메이킹에 열중하여 약 50곡 정도를 뽑아냈던 것 같다. 그때의 작업물들은 지금 들어도 크게 손색이 없고, 오히려 지금의 내 노래들보다 더 신선해서 종종 찾아 듣는 트랙들도 있다.
성인이 되면서 취업 후 상경하게 되고, 학생 때보다는 음악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긴 했다. 하지만 실제 내 목소리를 얹어 완성된 노래를 만들고, 발매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 시간제로 작업실을 빌리며 작업물들을 만들었다. 그때 완성되어 올해 초에 발매했던 싱글이 F/W이다. 발매만큼의 퀄리티가 되지 않았던 습작들은 나의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먼지가 쌓이고 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시간제로 작업실을 빌리다 보니 쫓기는 듯이 작업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였다. 시간을 충분히 들이지 못하니 패스트푸드 같은 노래들만 쌓였다. 그리하여 인생에 몇 안 되는 큰 선택을 내렸다. 월세로 작업실을 계약한 것이다. 내년 군대 때문에 6개월 정도 꽤나 짧게 계약을 했지만, 이곳에서 여러 추억이 쌓이고 곧 발매될 나의 첫 정규 앨범 노래들이 만들어졌다. 돌아보면 올해 제일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장비들을 언제 다 당근하고 정리할지 막막하긴 하지만... 필요한 장비가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싸게 팔게요
또 다른 방향성으론 '보컬레슨'과 '밴드 공연'이었다. 물론 작년에도 밴드 공연을 하긴 했지만, 지금 무대 영상을 다시 돌려보면 가창력과 무대 퍼포먼스, 감정 호소 등 많은 면에서 부족했다고 느낀다. 올해는 1년 반동안 보컬레슨을 받으며 쌓인 노하우와 나에게 어울리는 음역대, 발성 방법 등을 실제 곡선정과 무대에 적용하여 꽤나 들어줄 만한 무대가 된 것 같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음악적 성장에 있어서는 정말 큰 경험이었다. 군입대 전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해서 더 열정을 쏟아부었을 수도 있다.


올해 가장 흔들렸던 순간
이 얘기를 써야 하나 많이 고민했지만, 내 성장의 과정에서 빼놓지 못할 핵심적인 일이라고 생각되어 기꺼이 적으려 한다. 연애의 끝, '이별'이었다. 12월 초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이별 통보를 받고,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 최악의 날들을 보냈다. 어린 나이에 여러 힘든 일을 거치며 무너지지 않겠다고 확신한 나였지만, 어느새 사람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며 '나'라는 중심이 없어진 관계가 되었기에 무너졌던 것 같다. 스물한 살의 직장인 우준성에게 회의감이 들고 실망하는 순간이 잦아지면서, 또 다른 멋진 사람을 보며 대리만족하고 내 삶의 일부인 양 생각했던 게 근본적인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2주 정도를 놓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다가, 얼마 전에 와서야 내 마음까지 정리를 마쳤다.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쉽게 무너질 수 있구나를 깊게 느낀 순간이었다. 의식적인 차원에서 잡생각에 빠지지 않으려 업무에 집중하고 운동을 빡세게 해도, 무의식이 어느새 그 모든 노력을 부질없게 만들었다. 덕에 3kg이 자연스레 감량된 것은 장점이라 볼 수 있겠다. 그래도 주변에 고민을 나누고 잡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같이 외부 활동을 하려 해준 주변 분들 덕에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오롯이 내 삶의 중심으로써 존재하기를 바란다. 이제는 필름이 자주 끊기기 시작해서, 술을 줄여야겠다.
혼자인 순간이 외로움이 아닌, 가장 가까운 나 자신과 함께인 순간이면 좋겠다.


올해 가장 큰 고민과 불안
늘 그랬듯,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다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 아래 깊은 심해까지 도달하는 것 같다. 명확한 답은 없지만, 내게 있어서는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크게 보였다. '고액 연봉의 직장인으로써 정년까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에 도전하는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둘은 아무리 생각해도 타협을 볼 수 없는 대척점에 있는 방향성이라,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지금의 나로써는 둘 다 놓지 못하고 잡으려 하고 있지만, 체력과 시간에 한계를 느껴 절대적인 시간을 한 곳에 쏟고 싶다는 열망 탓에 둘 중 한 길만 선택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또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적시에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못한 인생의 과제들(예를 들면 대학 생활, 예술에 내 삶을 걸기 등)이 항상 눈에 밟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파고드는 상처처럼 걱정만 더 커져간다. 지금의 나로써는 하루라도 더 늦지 않을 때 못해본 경험들을 하고 싶지만, 앞에 21개월의 벽을 두었기에 어쩔 수 없이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올해 가장 재미있었던 일
글의 분위기가 자꾸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한 번 환기를 시켜봐야겠다. 재미있는 일이라.. 술자리, 여행, 야구 관람, 생애 첫 프로필 촬영, 밴드 공연 등 여러 일이 많았지만, 제일 강렬하게 떠오르는 일은 '배우 데뷔'였다. 말은 거창하지만, 영상학과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가 본인이 만들고 있는 단편영화에 배우로 출연한 일이었다. 친구의 제안에 단번에 응했고, 촬영 현장에서는 터무니없는 연기 실력을 부여잡고 카메라에 담겼다. 내가 연기하는 장면은 다시 보고싶지 않지만, 그때의 기억과 분위기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어쩌면 그들의 과제 제출을 위해 만들어진 단편영화이기에 내가 호들갑을 떠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경험이 단순히 현재 삶에 안주하던 나에게 큰 동기가 되어주었다. 회사에선 절대 만나지 못할 여러 대학생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대학 생활을 잠깐이나마 지켜보며 삶의 방향성은 좁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또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멋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면, 내 주변에도 그런 멋진 사람들이 존재하겠구나. 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내가 되길.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던 순간
스무 살때까지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젊음을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소중함을 알고, 조금이라도 더 추억을 쌓고 이 순간의 본전을 뽑으려 노력했다. 퇴근 후의 시간과 금요일 밤, 주말은 내게는 절대 낭비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덕에 조금의 성취도 이루었고 열심히 사는 내가 되었지만, 급하게 살아오고 어떤 순간이든 꽉 채우려 했던 내가 원했던 '낭만'을 느낄 수나 있었을까? 이건 항상 의문이었다. 꽉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박이 되어 나를 집어삼킨 것 같다.
물론 지금에 안주하고 그저 정해진 앞날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강박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술자리, 쾌락과 번아웃으로 빠져들지 않아야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내리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답을 알 것 같긴 하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지금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


말하지 못하고 지나간 감정들
작년까지는 '이기적인 사람이야말로 가장 이타적인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었다. 나를 제일 먼저 챙기고, 관계의 중심에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취향이 옅어지고, 남의 말에 쉽게 홀렸었던 나로써는 내 삶에 적용하고 싶은 멋진 신념이었다. 허나 힘든 일이 하나씩 쌓여가고, 남의 아픔을 조금씩 알게 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나와는 생각이 조금 달라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 따뜻한 말 한마디와 그런 행동의 온도가 새삼 포근하게 느껴졌다.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타인을 따스하게 대하는 섬세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기조가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치다 보니, 여러 관계에서 나 자신을 잃은 것 같다. 앞으로는 나를 가장 먼저 챙기되,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포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 차가운 세상에 나라도 따뜻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허 중용은 항상 쉽지 않은 것 같다.
올해 고마웠던 사람들
일단 제일 먼저 부모님을 꼽지 않을 수 없겠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행복한 순간들에 있어서는 연락을 자주 안 했는데, 힘든 순간마다 제일 먼저 털어놓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는 부모님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리 슬퍼도 쉽게 눈물이 나지 않지만, 엄마 목소리만 들으면 울음의 트리거가 된다. 앞으로는 힘든 순간이 아니더라도 자주 연락을 드려야겠다.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반려견 빼꼼이에게도 항상 고맙다.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주고, 본가를 갈 때마다 과하게 반겨주는 꼬순내 덩어리. 생각이 많을 때면 같이 산책하고, 뛰고, 자고 하면서 어떤 사람보다 큰 정이 들었다. 서울에 올라오면서 자주 볼 수는 없게 되었고, 내가 챙겨주지 못하는 게 많아지면서 미안하게 되었다. 내가 늦지 않게 자유를 찾아서, 빼꼼이와 함께 외국을 여행하고 뛰어놀 수 있으면 좋겠다. 중학생 때만 해도 애기였는데 벌써 6살이라니, 세월이 너무 야속하다.
다음 사람은 샷아웃투 경덕. 어쩌면 올해 제일 많이 본 지인이다. 여덟 살 차이가 나는 형이지만, 생각의 흐름도 비슷하고 열정의 순도도 비슷해서 큰 거리감이 없는 것 같다. 올해 여행은 대부분 이 형과 같이 다녔다. 평소엔 굉장히 유머러스(negative)한 친근한 형이지만, 내가 무너질 때나 생각에 크게 잠겨 있을 때마다 현실적인 조언과 외부 활동으로 나를 일으켜준 분이다. 새삼스레 이런 말을 하니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불안정하고 우유부단한 나의 곁에 계셔주는 것,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에 큰 감사를 전하고 싶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종종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묻고 같이 고민하고 싶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도 많이 고마웠다. 대외적인 활동이나 여행, 개인 스케쥴로 못볼 때가 많았음에도, 다시 내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싶을 때 그 자리에서 반겨준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과 함께할 때면 뒤끝없는 순수한 행복이 차오른다. 앞으로는 덜 이기적인 내가 되어 친구들을 위하고 싶다.
(자칭) 레전드 무대를 함께 만들어주셨던 자랑스러운 밴드 애니동아리(AND) 형누님들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어리고 소통에 미숙한 나를 항상 평등하게 대해주시고, 또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아낌없이 연습하고 호흡을 맞춰주심에 감사하다. 계속 음악을 하게 된다면 언젠가 우리 밴드만의 자작곡을 협업해서 만들고 싶다. 두 번의 공연, 한 번의 노래를 위한 수많은 합주, 합주 이후 술자리 등 추억은 굉장히 행복하게 남았다. (밴드의 매니저 민수 형께도 너무 감사하다. 에너지바 너무 잘 먹었습니다!)
이 글을 못 보시겠지만, 우리 셀 선임들께도. 많은 것을 모르고 사회생활도 서투른 막내였음에도, 모르는 것은 하나하나 상세히 알려주시고 내리사랑과 동지애로 품어주셨다. 속마음과 진심어린 조언도 고민하지 않고 말씀해주신 덕에 사회인으로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업무에 있어 롤모델이 있다면, 우리 셀의 송프로님을 꼽고 싶다.
이 곳에 모두 적진 못했지만,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직접 연락하고 보답하며 앞으로는 내가 고마운 사람이 될 수 있게 살아야겠다.
예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
MBTI를 믿지 않게 되었다. 자세히 말하면 나를 더 이상 MBTI로 소개하고 있지 않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2년 전에는 ENTP였는데, 지금은 귀찮아서 재검사를 안하고 있어요'라고 한다.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과 현실의 나, 어느 MBTI가 내가 맞을까. 현실의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는 할까. 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인데 내 성격이라고 한결같을까. MBTI 대로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다가갔던 사람에게서 다른 면모가 보일 때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나. 나를 규정하는 것에 대해 갈아엎고 있는 나이기에, 언제 다시 나를 규정하는 단어가 생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죽기 전까지 다시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2026년의 버킷리스트
적기만 해도 설레이는 일들. 사실 내년이라고 해야 3개월 남짓이다. 내년 3월 23일(예정)에 공군에 입대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동안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1. 정규 앨범 발매하기. 앨범 이름은 [스물하나]일 예정이며, 사실 올해 냈어야 나의 나이와 깔끔하게 일치하나 귀찮음이 종종 육체를 지배하는 탓에 내년으로 미뤄진 것이다. 숫자 하나라도 맞추려면, 1월 21일이 제일 유력하다.
2. 유럽 혼자 여행 가기. 돈도 모았겠다, 군대가기 전의 시선으로 한 번쯤은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두렵긴 하지만,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자는 마음으로 힐링하고 와야겠다. 오로라는 꼭 보고싶다.
3. 백금발 탈색하기.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꼭 해보고 싶은 것이었으나, 마침 회사 휴가 및 휴직을 모두 쓰면 군대가기 전에 타이밍이 딱 좋을 것 같아 해보려 한다. 눈썹까지 탈색할지 고민이다.
4. 1월 1일 등산, 정상에서 일출 보기. 19살까지 해왔었지만, 성인이 되며 멈췄던 루틴을 다시 해보고자 한다.
2025년 요약
아직 너무도 불완전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며, 나 자신도 나를 알지 못하는 해였다. 군 입대를 앞두고서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떠나기도 했다. 결국엔 지나갈 거라는 믿음만 가지고 흘려온 날들, 돌아보니 지나가긴 했지만 유의미했던 시간이 몇이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청춘의 기회비용을 고민하는 것과 삶의 여유를 논하는 것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감정의 기복도 심한 요즘이다.
아쉽게도, 시원하게 딱 한 문장으로 올해를 요약할 수는 없겠다. 긍정적인 미래를 점치며 글을 마무리할 수도 없어서 씁쓸하긴 하다만, 다음 회고 언젠가에서 다시 그런 문장을 적을 날이 올거라는 믿음은 가지고 싶다. 얼른 영등포를 뜨고 싶다.
일관성없고 두서없이 끄적인 글을 소중한 시간 내어 끝까지 읽어주셔서 한없이 감사합니다. 다들 이 악물고 버텨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겪고 계신 불안이 설렘이 되길 바라며, 항상 응원하겠습니다!